선농단을 가기 위해 1호선 제기동역 1번 출구로 나와 첫 번째 골목으로
들어서서 직선으로 올라가면 우측에 있다.
1번 출구에서 약 400m 거리에 있다.(왕산로 19길)
[선농단 가는 길]
1호선 제기동역 1번 출구. (왕산로 19길)
6호선 안암역 3번 출구. (무학로 44길)
[관람료]
무료
[주차장]
없음
[휴관일]
매주 월요일과 법정공휴일
▶선농단역사문화관
2015년 서울 동대문구에서 선농단의 역사와 의의를 전시하는 목적으로 개관하였으며,
제1전시실은 선농단의 유래 및 변천과정, 선농대제, 왕의 어가행렬, 친경의례에 관한 내용이
전시되어 있고, 제2전시실은 선농대제 제사상 진설체험, 의복체험, 선농대제 사진촬영,
전통농기구체험 등 옛 조상들의 삶과 문화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또한 세미나시설을 갖추고 있어 대관업무도 하고 있다.
역사관 입구 전경의 모습이다.
선농의 시대별 변천사를 기록해 두었다.
고대 중국의 제왕인 제신농 씨(帝神農氏)와 후직 씨(后稷氏)
제신농 씨(帝神農氏)와 후직 씨(后稷氏)의 위패.
위에서 본 제2전시실의 모습.
계단을 따라 제2전시실로 내려간다.
제2전시실.
▶설렁탕 이야기
예부터 선농제를 올리고 나서 국왕을 비롯해 조정 중신은 물론 서민에 이르기까지
밭을 간 뒤 백성을 위로하여 소를 잡고, 국말이 밥과 술을 내렸다.
'국밥을 선농단에서 내렸다' 하여 선농단 →선농탕 →선롱(렁)탕으로 변천해
지금의 설렁탕이란 이름이 유래했다고 한다.
왕은 제를 올린 뒤 직접 밭을 갊으로써 백성들에게 농사일이 소중함을
알리고 권농에 힘쓰도록 하였다고 한다.
선농대제를 위해 차려진 제사상의 구성과 내용을 체험하는 곳.
면복 : 임금이 제향이나 즉위식 등에 입는 예복이다.
제복 : 조선시대에 문무백관들이 설날, 동짓날, 경축일 또는
제사 지낼 때 착용하는 예복이다.
하늘에 올린 제사.
농사일에 쓰이는 도구.
가래 : 흙을 뜨고 파는데 쓰는 연장.
쇠스랑 : 두엄, 풀무덤 등을 쳐내는 연장.
키 : 곡식의 쭉정이나 티끌을 골라내는 도구.
삼태기 : 흙이나 거름 따위를 담아 나르는 도구.
갈퀴 : 나뭇잎, 검불 따위를 끌어 모우는 연장.
넉가래 : 곡식을 밀어 모으는데 쓰는 연장.
모심기 체험장.
오픈 세미나 공간.
이것으로 역사관은 마무리하고 제를 올리는 선농단으로 나간다.
▶선농단[ 先農壇 ]
농사짓는 법을 가르쳤다고 일컬어지는 고대 중국의 제왕인
신농 씨(神農氏)와 후직 씨(后稷氏)를 주신으로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면적은 4㎡이며, 지금은 사방 4m의 돌단만이 그 자리에 남아 있다.
선농의 기원은 멀리 신라시대까지 소급되는데, 고려시대에 이어 조선시대에도
태조 이래 역대 임금들은 이곳에서 풍년이 들기를 기원하며 선농제를 지냈다.
또한, 제를 올린 뒤에는 선농단 바로 남쪽에 마련된 적전에서 왕이 친히 밭을 갊으로써
백성들에게 농사일이 소중함을 알리고 권농에 힘쓰기도 하였다.
1476년(성종 7)에는 이곳에 관경대를 쌓아 오늘날의 선농단이 이룩되었다.
왕이 선농단에서 친경하는 제도는 1909년(융희 3)을 마지막으로 일제하에서 폐지되었다.
2001년 12월 29일 사적 제436호로 지정되었다.
악귀를 물리치는 붉은색 홍살문이 있다.
▶선농제향[ 先農祭享 ]
조선시대 역대 국왕이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현재의 제기동 선농단에서 올리던
제례에 기원을 두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폐지되었다가 1979년부터 제기동의 뜻있는 주민들이
선농단 친목회를 조직해 1년에 한 번씩 제례를 행해오다가
동대문구가 1992년부터 매년 4월 20일 권농의 날에 구민의 날과 병행해 주관하고 있다고 한다.
선농단에서 왕이 친경하는 제도는 1909년(융희 3)을 마지막으로 폐지되었고
현재는 돌단(지방유형문화유산 제15호)만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사방으로 홍살문이 있으며 이는 신성시되는 장소를 보호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선농단 향나무
1972년 8월 2일 천연기념물 제240호로 지정되었다.
나무의 나이는 약 500년으로 추정된다.
높이 약 10m, 가슴높이의 줄기둘레는 2m이며,
가지는 지상 2.5m 높이에서 동서로 8.7m, 남북으로 10.4m 퍼졌다.
▶청량대[ 淸凉臺 ]
일제는 조선의 민족문화를 말살하려 선농단이 위치한
이곳에 청량 공원을 조성하고 청량대 표석을 세워 선농단의 의미를
퇴색하려 했으며,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자 선농제에서 사용하는 제기마저
군비물자로 수탈하여 제사를 못 지내게 했다.
그 후 광복이 되던 날 울분에 찬 주민들에 의해 쓰러트려진 표석이
아직도 그대로 누워있다.
파란 하늘 아래 담장에 걸린 향나무를 마지막으로 제기동역으로 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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