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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릉

영휘원과 숭인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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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휘원은 대한제국 1대 고종의 후궁이자 의민황태자(영친왕)의 생모 
순헌황귀비 엄 씨의 원이다. 
영휘원은 1911년 황귀비 엄 씨가 세상을 떠나자, 명성황후의 홍릉(옛 홍릉) 
경내인 현재의 자리에 조성되었다.
영휘원은 조선시대 왕 생모의 무덤 제도(궁원제)에 따라 조성되었다. 
또한, 숭인원은 엄 귀비의 아들이며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의 맏아들 이진의 원이다.

[대중교통]
1호선 청량리역 2번 출구로 나와 홍릉방향 도보 10분.
6호선 고려대역 3번 출구로 나와 홍릉방향 도보 10분.
1호선 청량리역 2번 출구로 나와 201, 1227번 이용 세종대왕기념관 하차.

[ 입장료]
입장료: 1, 000원.
지역주민 50% 할인.
문화가 있는 날 무료.
장애인, 유공자 무료.
만 24세 이하 및 만 65세 이상 무료.
매주 월요일 휴무. (휴무일이 공휴일과 겹칠 경우 다음날 휴무) 

[주차요금]
무료

[매표 및 관람 시간]
(2~5월 / 9~10월)
매표시간 09:00~17:00
관람시간 09:00~18:00

(6~8월)
매표시간 09:00~17:30
관람시간 09:00~18:30

(11~1월)
매표시간 09:00~16:30
관람시간 09:00~17:30

 

▶왕실 무덤 분류

능: 왕과 왕후, 황제와 황후의 무덤.
원: 왕의 사친(왕의 후궁이나 종친)과 왕세자, 왕세자빈, 황태자, 황태자비의 무덤.
묘: 폐위된 왕이나 일반 무덤.

 

오늘은 대한제국 왕실 중 순헌왕귀비 엄 씨의 영휘원과 그의 아들이며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의 맏아들 원손 이진의 숭인원에 대해 알아보자.

영휘원과 숭인원의 안내도.

영휘원과 숭인원은 사적 제361호로 지정되어 있다.

들어가는 출입문으로 우측은 공사 중이다.

들어서자마자 맥문동 자락이 푸르름을 자랑하며 반겨준다.

능 중앙 마당에는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벤치가 마련되어 있으며
아이를 데리고 체험학습을 나온 어린아이들도 만날 수 있었다.
인근에는 세종대왕기념관도 있어 아이들과 역사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며 
둘러보면 좋은 시간이 될 것 같다. 

숭인원으로 오르는 길을 야자매트로 안내한다.

숭인원 상설도.

▶홍살문

신성한 지역임을 알리는 문으로 둥근기둥 두 개를 세우고 위에 지붕 없이 
화살 모양의 나무를 나란히 세운 형태로, 중앙에는 삼 태극무늬가 있다.

향로는 제관이 향과 축문을 들고 가는 길이며 
어로는 따로 구분되어 있지 않다.

▶판위

제사 때 제관과 초헌관이 서있는 자리로
조선왕릉은 우측에 있으나 황제릉의 판위는 좌측에 자리 잡고 있다.

▶정자각

능에서 제사를 지낼 때 사용하는 중심 건물이며,
위에서 보면 제수를 진설하는 'ㅡ'자 모양의 정청과 제향을 드리는 'ㅣ'자 모양의 배위청이 
합쳐진 모습이 '丁'(고무래 정) 자 모습이라 정자각이라고 한다. 

정전 3칸에 배위청 2칸이 덧붙은 5칸으로 되어 있다.

정자각 계단

정자각 계단은 정면에 두지 않고 측면에 만들었다.
이는 해가 동쪽(시작과 탄생)에서 떠서 서쪽(끝과 죽음)으로 지는 섭리를 
건축물에 활용한 것이라고 한다.

왼쪽 신계 : 신이 오르는 계단. 
오른쪽 어계 : 제를 올리는 왕과 왕세자가 오르는 계단.

정청 내부에는 제수를 진설하는 제상(祭床)과 향을 올리는 향상(香床),
축문을 올리는 축상(祝床) 등이 진열되어 있다. 

▶산신석

장사 후 3년 동안 후토신(땅을 관장하는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곳으로
정자각 뒤 오른편에 있다.

비각

왕의 행적을 적은 신도비나 표석을 보호하는 건물.

▶표석

비석의 앞 면에는 '원손숭인원'이라고 전서체로 쓰여 있다.
뒷면은 비석의 비문이 훼손되어 표기하지 않았다는 문구가 적혀 있는데 
생이 짧아서 적을 것이 없는 것은 아닐까.....

숭인원 정자각의 기둥이 원기둥이 아니고 사각기둥으로 세워졌다.
이유가 있을까?

제향을 받은 혼령은 신문을 나와 신로를 따라 능침으로 돌아간다.

정자각 내부이며 홍살문이 정면으로 보인다.

정자각 서쪽계단

제례를 마친 제관들이 계단을 내려와 북서쪽에서 제례를 끝낸다는 의미로 
지방을 불사르고 제물을 예감에 묻는다.
그러나 예감은 찾아볼 수가 없다.

추녀마루 위에 용두와 잡상.

▶숭인원

숭인원은 의민황태자(영친왕)의 첫째 아들 원손 이진의 원이다. 
숭인원은 1922년 원손이 세상을 떠나자 영휘원 동쪽 언덕에 조성되었다.
(사진자료: 궁능유적본부)

▶원손 이진

원손 이진은 의민황태자(영친왕)과 황태자비 이 씨(이방자)의 첫째 아들로 일본에서 태어났다. 
1922년 황태자 부부와 함께 잠시 귀국하였으나, 
일본으로 돌아가기 하루 전인 1922년 5월 11일에 덕수궁 석조전에서 급사하였다. 
이진은 생전에 소화불량에 시달렸고 죽기 직전에는 초콜릿색을 띤 덩어리를 계속 
토해냈었다고 하여 생후 1년도 안 되어 병으로 돌아가셨다. 
당시 풍습은 임금의 아들이라도 영아가 죽으면 장례를 치르지 않았다. 
부모보다 먼저 죽어 불효를 했기 때문이다. 
순종은 원손의 죽음을 애석하게 여겨 특별히 장례를 치르도록 했다고 한다.

원손 이진은 일제에 강점당했던 시대에 태어나 미처 꽃을 피우기도 전에 
너무도 짧은 생을 살다가 이곳 숭인원에서 영원히 숙면에 들어가셨다.

원침 봉분은 병풍석과 난간석을 생략하였고, 문석인, 석마, 장명등, 혼유석, 
망주석, 석호 1쌍을 배치하였다. 
전체적인 모습은 영휘원과 비슷하나 봉분과 석물의 크기는 작다. 

숭인원의 석물 중 문인석의 모습이 전통 문인석과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혹시,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인의 손에 의해 제작된 게 아닐까?
아니면 어린아이여서일까?

▶어정

임금에게 올릴 물을 긷는 우물, 또는 제향에 사용하여 제정이라고도 한다.

영휘원으로 넘아간다.

영휘원 전경.

영휘원 상설도.

영휘원 홍살문.

▶참도

홍살문 앞에서 정면의 정자각까지 얇은 돌을 깔아 만든 긴 돌길이 이어진다. 
이 길을 참도라고 한다.

좌측의 향로가 능의 주인인 신이 다니는 길로 우측의 어로보다 약 10센티미터 정도 높고 넓다.

왕의 행적을 적은 신도비나 표석을 보호하는 비각.

‘순헌귀비 영휘원’이라고 쓰여있는 표석.

산신석.

신로.

신계와 어계.

정자각 내부.

해마다 7월 20일에 기신제를 지낸다.

정자각에서 바라본 홍살문.

붉은 기둥의 아래에는 흰색과 위에는 푸른색으로 주근도배(柱根塗褙)를 칠하였다.
하얀색은 구름을 상징하고 파란 테두리는 하늘을 상징한다.
정자각을 멀리에서 보면 하늘(구름)에 떠있는 듯한 모습으로 보인다 하여 
운상각(雲上閣)이라고도 한다.
이는 '구름 위는 신들이 노니는 공간으로 정자각이 
천국에 있음을 상징하고 있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라고 한다.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정정남 교수(건축학) -

▶정자각

능에서 제사 지낼 때 사용하는 중심 건물이며,
위에서 보면 ‘丁’ 자와 같아 ‘정자각’이라고 부르며 
정전 3칸에 배위청 2칸이 덧붙은 5칸으로 되어 있다.

영휘원은 고종황제의 후궁이었던 순헌황귀비 엄 씨의 원이다. 
영친왕의 생모임에도 후궁이었기 때문에 원으로 조성되었다. (사진자료: 궁능유적본부)

원침 봉분은 병풍석과 난간석을 생략하고 호석만 둘렀고, 문석인, 석마, 장명등, 
혼유석, 망주석, 석양과 석호 각 1쌍을 배치하였다. (사진자료: 궁능유적본부)

▶순헌황귀비 엄씨

순헌황귀비 엄 씨는 본관이 영월인 증 찬성 엄진삼의 딸로 1854년(철종 5)에 태어났다. 
5살의 나이에 궁녀로 입궁하여 명성황후를 모시다가, 
1895년 을미사변으로 명성황후가 시해된 후에는 고종을 모셨다. 
아관파천 이후 정식으로 고종의 후궁이 되어 1897년 대한제국 선포 후 황태자인 영친왕을 낳았다. 
이후 귀인(貴人), 순빈(淳嬪), 순비(淳妃)를 거쳐 1903년(광무 7)에 황귀비로 책봉되었다. 
황귀비는 여성의 신교육에 관심을 두어 진명여학교(진명여고)와 명신여학교(숙명여대), 
양정의숙(현 양정중, 고등학교)의 설립을 지원하였다. 
경술국치 후 1911년 덕수궁 즉조당에서 58세로 세상을 떠났다. 
시호는 순헌, 사당의 이름을 덕안궁이라 하였다.

▶아관파천

을미사변 후 일본의 간섭을 피하기 위해 상궁의 신분으로 
고종을 러시아 공관(아관)으로 피신하는 것을 계획하고 실행하였다. 
며칠 동안 가마 2채로 궁을 출입하며 일본의 감시를 피해
고종과 왕세자(순종)를 가마에 태워 러시아 공사관으로 탈출시킨 사건.

영휘원 전경.

담장 넘어 재실의 모습이 보인다.

재실 전경.

능을 관리하던 참봉이 기거하면서 제향을 준비하던 재실. 

제기를 보관하던 제기고.

남편과 아들은 멀리 떨어져 있지만, 그나마 맏손주 이진이 옆에 있어 
순헌황귀비 엄 씨의 외로움을 달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영휘원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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