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한양도성 순성길을 가기 위해 윤동주 문학관으로 왔는데
백악산으로 오르는 길이 공사 중이다.
난감한 시간이 잠시 흐르고 그럼 인왕산 구간을 먼저 갈까
아니면 백악산을 패스하고 백악산 구간을 갈까
아니야 백악구간에 백악산이 빠지면 안 되지 하고
고민과 고민을 거듭한 끝에
그래 한양도성 순성길은 백악산 구간 공사가 끝나면 가고
인왕산 자락길을 따라 내려가 보자는 결론을 얻고 쉬엄쉬엄 내려가기로 했다.
경복궁역 3번 출구에서 7212번을 타고 자하문 고개 윤동주 문학관에서 내렸다.
1968년 1월 21일 청와대를 습격한 공산 유격대 31명과
교전 중 전사한 고 최규식 경무관과 고 정종수 경사의 순직비가 있다.
길을 건너 맞은편 윤동주 문학관으로 건너간다.
▶윤동주 문학관
윤동주 시인의 문학작품과 자료를 전시한 문학관으로,
2012년 7월 25일 개관하였다.
2012년 대한민국 공공건축상, 2014년 서울시 건축상을 수상했으며
2015년에는 현충시설로 지정되었다.
민족시인 윤동주의 시 세계를 널리 알리고 민족정신을 기리기 위해 버려져 있던
상수도 가압장과 물탱크를 활용해 만든 문화재생시설이다.
문학관 내부는 3개의 전시실에 참회록· 육필원고 등 133점의 자료들이 전시돼 있으며
문학관 뒤편 인왕산 자락에는 ‘윤동주 시인의 언덕’이라는 이름의 작은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이 언덕에는 윤동주 시인의 대표작 ‘서시’가 바위에 새겨져 있다.
▶윤동주
1917년 12월 30일 만주 북간도의 명동촌에서 태어나
1925년 명동소학교에 입학하여 송몽규 등과 문예지 '새 명동'을 발간했다.
1938년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하였으며, 1939년 산문 '달을 쏘다'를 조선일보에,
동요 '산울림'을 소년지에 각각 발표하였다.
1942년에는 일본으로 건너가 대학 학업 도중 1943년, 송몽규와 함께 독립운동 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그는 2년 형을 선고받고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복역하였으며,
복역 중이던 1945년 2월 생을 마감했다.
시인의 주요 작품으로는 서시, 자화상, 또 다른 고향, 별 헤는 밤, 쉽게 쓰여진 시등이 있다.
윤동주 문학관 옆으로 계단을 따라 올라간다.
시인의 언덕으로 오른다.
시인의 언덕 전망대.
▶북악산
경복궁의 북쪽에 솟아 있는 북악산은 해발 342m로 높지는 않으나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서울의 진산으로 꼽힌다.
옛 서울의 성곽들이 북악산을 기점으로 축조되었고 산 능선을 따라 성벽이
원형에 가깝게 보존되어 있는데 1968년 무장공비 침투 사건으로 일반인의 접근이
금지되었다가 2006년 서울성곽 탐방로로 꾸며져 일반에 공개되었다.
조선 시대부터 심은 노송들이 곳곳에 남아 있어 풍취를 더하는 아름다운
성곽을 따라 정상인 백악마루에 오르면 인왕산의 전경이 코앞에 드러나고
서울 시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인왕산 기차바위도 조망된다.
별 헤는 밤/윤동주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 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佩), 경(鏡),옥(玉)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애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들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쟘,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슬히 멸 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엿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방처럼 폴이 무성할 게외다.
(一九四一、十一、五.)
윤동주 시인의 언덕에 위치한 '윤동주 시비'
서 시/윤동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1941, 11, 20,
시인의 언덕을 내려오면 만나는 서시정.
이곳은 휴식을 취할 수 있으며 옆으로 화장실도 준비돼 있다.
우측 한양도성 순성길과 좌측 인왕산 자락길이 갈라선다.
▶걷기운동의 10가지 효과
1, 다리와 허리 근육을 튼튼하게 하여 요통을 치료한다.
2, 관절을 부드럽게 하고 퇴화를 예방한다.
3, 혈압을 줄여 당뇨를 치료한다.
4, 요산 수치를 내려 통풍을 예방한다.
5, 뼈를 튼튼하게 하고, 골다공증을 예방한다.
6, 뇌의 활동을 활성화해 노화를 방지한다.
7, 고혈압을 개선한다.
8, 심장병을 예방한다.
9, 체력을 유지해 노화를 방지한다.
10, 체중을 조절해 준다.
▶인왕산 초소책방 더 숲
인왕산 초소책방은 1968년 1월 21일 김신조 사건 이후 청와대 방호목적으로 건축하여
지난 50년간 인왕산 지역을 부분 통제해 왔던 경찰초소로 이용되어 왔으나,
2018년 인왕산 전면 개방에 따라 서울시와 종로구가 뜻을 모아 리모델링한 건물이다.
기본 건물의 철근콘크리트 골조를 살려 폐쇄적이었던 내부공간을 개방하고
일부 훼손되었던 자연을 복원하여 시민을 위한 복합문화공간과 전망데크로 조성하였다.
책방과 카페로 운영되고 있어 잠시 머물기에도 좋은 곳이다.
건물 옆으로 테라스가 조성되어 있어 야외에서도 커피와 음료를 마실 수 있다.
책과 빵, 그리고 커피와 시내 전역이 시야에 들어오는 뷰가 어우러진 복합 문화 공간이다.
2층으로 오르는 계단과 테라스.
기존의 2개 높이의 1층 건물을 일부 증축하여 서로 다른 2개의 층고를 유지하고,
내·외부 계단을 새로 만들어 건물 내 어디든지 도심을 전망할 수 있도록
조성되어 있으며 책방과 카페가 있어 여유로운 자유를 만끽할수 있는 공간이다.
인왕산 등산 후 필수 코스며 주차시설도 갖추고 있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택시를 이용해서 올라오는 분들도 많다. (시간 되면 '강추')
더 숲을 뒤로 하고 내려간다.
무무대 전망대.
▶무무대(無無帶)
인왕산 자락길의 무무대 전망대에 서면 서울 시내의 조망을 한 눈에 담을 수 있다.
청와대의 삼엄한 권력의 공간에서 벗어나 이젠 국민에게 모든 것이 공개되어
'아무것도 없구나 오직 아름다운 것만 있을 뿐'이라는 뜻을 가진 무무대 전망대에 서면
정말 아무것도 없이 아름다운 서울 시내의 풍광을 시원한 바람과 함께 바라볼 수 있는 곳이다.
전망대에서 바라 본 백악산.
종로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고 멀리 남산타워가 가시권에 들어온다.
이곳 무무대는 조망명소로 알려져 있건만 그런 팻말조차
허용하지 않는 정말 아무것도 없는 전망대다.
무무대를 내려서 4기점에 도달한다.
정면으로 인왕산 기차바위가 웅장한 모습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인왕산
나라 안팎으로 이름난 산, 북한산이 남쪽으로 보현봉을 솟구치고 다시 북악에서
한 줄기는 동쪽 낙산으로 또 한 줄기는 서쪽으로 뻗어 인왕산을 빚어 놓았다.
풍수상으로 보면 조산인 북한산에서 주산인 북악산에 연결되고 낙산이 좌청룡이면
인왕산은 우백호가 된다.
서울의 중심에 솟아있으며 높지는 않지만, 산세는 웅장하다.
특히 동쪽 기슭이 아늑하고 풍치가 빼어나 장안 제일의 명승지라 할 수 있다.
북쪽 자락에 있는 부암동은 무계동이라 불리던 곳으로 중국의 무릉도원에
버금갈 정도의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하던 곳이다.
도로를 따라 사직공원 방향으로 내려가는 중이다.
인왕산의 명물 인왕산 호랑이상.
▶인왕산 호랑이
조선 태종 5년(1405) 7월에는 호랑이가 경복궁 내정까지 들어왔고,
세조 10년(1464) 9월에는 창덕궁 후원에 들어왔으며,
연산군 11년(1503) 5월에는 종묘에 침입하였다.
그 밖의 민가에는 피해가 실로 많았다.
세조는 친히 세 차례나 백악에 올라가서 호랑이를 잡았으며,
시 외곽인 양주 수락산과 고양 벌고개에까지 나아가서 호랑이를 사냥하였다 한다.
인왕산 유아숲 체험장.
도롯가에 쾌적한 화장실도 마련돼 있다.
2002년 12월에 서울시에서 세운 등가정 터비.
뒤로 돌아서면 '등가정'이라 새겨진 바위가 있다.
전통활터 '황학정'의 모습.
▶황학정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황학정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25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정자는 1898년 어명에 의하여 경희궁의 회상전 북쪽 궁장 가까이에 꾸며졌던
궁술연습을 위한 사정(射亭)이다.
1922년 일본 사람들이 경성중학교를 짓기 위하여 경희궁을 헐 때,
현재 위치로 이전하였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 때에도 꾸준히 명맥을 이어 온 황학정은
현재 서울 종로구 사직공원 인근 산자락에 위치하고 있으며
원래 오사정의 하나인 등과정이 있던 자리라고 한다.
이곳에는 국궁을 직접 시행할 수 있는 곳도 있고,
활의 역사를 그대로 볼 수 있는 국궁전시관도 있어
누구나 자유롭게 찾아와 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이다.
실제로 이곳 황학정에서는 활쏘기 대회와 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이라고 한다.
황학정은 당시 고종 황제는 "비록 활은 군대의 무기에서 제외되었으나,
국민의 심신단련을 위한 활쏘기는 권장되어야 한다"는
어명으로 황학정을 건립하여 민간에 개방했다.
무기로써의 역사적 사명을 다 한 우리 활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신체활동이자 문화로 재탄생할 수 있었다고 한다.
사직공원 옆으로 종로도서관 건물이 시야에 들어온다.
▶단군성전
단군성전은 백악전이라고도 불리며, 우리 민족의 상징을 기리기 위해
정부 표준 단군 영정과 단군상이 모셔져 있다.
이 공간은 이숙봉 여사에 의해 일제강점기에 일본 신사가 있던 공간에서 단군성전으로
개축되었으며, 1990년에는 쌍용그룹 김석원 회장이 개축하여 서울시에 기증하였다 한다.
매년 봄에는 어천절(음력 3월 15일) 가을에는 개천절에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어천절이란 단군이 인간세계에 내려와 임금의 자리에 오르고 은덕을 베푼 후
다시 하늘로 올라간 날이라고 한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사직동 인왕산의 줄기가 남쪽으로 뻗어 내려온 곳에 사직단과 함께 위치한다.
입구에는 삼문을 세웠고 단군성전의 본전은 정면 3칸의 다포계 팔작지붕으로 건립되었다.
성전의 내부에는 단군을 형상화한 조형물이 안치되어 있다.
단군을 모시고 있는 사당은 이곳 말고도 대구, 태백, 고창, 남해, 정읍 등에도 있다.
그런데 성전의 색상이 우리가 흔히 봐왔던 사당의 모습과는 다르다.
무슨 일인지는 알 수는 없지만 누른색에 가까운 색은 처음이다.
글쎄 약간 가벼워 보인다고나 할까~
사직단 담장을 끼고 내려간다.
▶사직단
사직단은 토지의 신과 곡식의 신에게 제사를 올리던 곳이 바로 사직단이다.
농업을 기반으로 하는 사회에서 농사의 풍년만큼 중요한 것이 없었을 터,
왕이 친히 하늘에 올리는 제사를 주관하며 한 해 농사 풍년을 기원하던 곳이다.
사직에는 단이 두 개 있는데 동쪽의 단은 토지의 신께 제사를 올리는 사단이고,
서쪽의 단은 곡식의 신이 주인이 되는 직단이다.
1910년 전후 일제에 의해 제사가 폐지된 이후 조선총독부가 이 일대를 철거하면서
공원을 만들어 사직의 기능을 상실한 채 지금껏 사직단이 아닌 사직공원으로 불리고 있다.
1963년 1월 21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사직단을 마지막으로 경복궁역으로 이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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