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릉은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에 있다.
온릉은 조선 11대 중종의 첫 번째 왕비 단경왕후 신 씨의 능이다.
1557년(명종 12) 단경왕후가 폐비의 신분에서 세상을 떠나자,
친정 집안인 거창 신 씨의 묘역인 지금의 자리에 묘를 조성하였다.
1739년(영조 15)에 단경왕후로 복위되면서 능의 이름을 온릉이라 하고,
묘를 정릉(貞陵, 신덕황후)과 사릉(思陵, 정순왕후)의 예에 따라 다시 조성하였다.
[온릉 가는 길]
1호선 가능역 1번 출구에서 38, 360번 버스 이용 신흥유원지 온릉앞 하차.
3호선 구파발역 2번출구에서 360번 버스 이용 신흥유원지 온릉앞 하차.
[관람요금]
무료
[주차요금]
무료 (약 20대정도)
[온릉 매표 및 관람 시간]
2~5월 / 9~10월
매표시간 09:00~17:00
관람시간 09:00~18:00
[6~8월]
매표시간 09:00~17:30
관람시간 09:00~18:30
[11~1월]
매표시간 09:00~16:30
관람시간 09:00~17:30
온릉 안내도.
중종의 가계도.
대중교통이 불편해 찾는이도 그리 많지 않는 양주 온릉.
주차시설은 약 20여 대 정도 주차할 수 있다.
▶조선왕릉 유네스코등재 기념비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조선왕릉 40기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500여 년간 이어진 왕조의 능이 단 한 곳도 훼손되지 않고 모두 남아있다는 점과
조선왕릉의 높은 문화적 가치를 높이 평가하여 2009년 6월 30일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1970년 5월 26일 사적 제210호로 지정되어 있다.
길가에 자동차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달리는데,
온릉은 그 누구도 찾는 이가 없어 기다림에 지쳐있는 듯하다.
울창한 숲아래로 깔끔이 정리된 길을 따라 능으로 들어간다.
좌측에 아담한 재실이 보인다.
온릉 재실은 다른곳에 비해 규모가 적으며 단조롭다.
▶재실
재실은 온릉을 관리하는 능참봉의 생활공간이자 능 제사를 준비하던 공간이다.
대청마루 정면으로 조선왕릉 세계유산 인증서가 걸려 있다.
현재 관람객은 연세 드신 두 분만 있다.
▶홍살문
홍살문은 둥근기둥 두 개를 세우고 위에 지붕 없이 화살 모양의 나무를 나란히 세운 형태로,
중앙에는 삼 태극무늬가 있다.
▶판위
제사 때 제관과 초헌관이 경건한 마음으로 기다리는 공간.
조선왕릉은 우측에 있으나 황제릉의 판위는 좌측에 자리 잡고 있다.
▶신로와 어로
참도는 혼령이 이용하는 신로(향과 축문)와 참배자(왕 또는 제관)가 이용하는 어로로 구분된다.
좌측의 신로가 능의 주인인 신이 다니는 길로 우측의 어로보다 약 10센티미터 정도 높고 넓다.
▶참도
홍살문 앞에서 정면의 정자각까지 얇은 돌을 깔아 만든 긴 돌길이 이어진다.
이 길을 참도라고 한다.
▶정자각
능에서 제사 지낼 때 사용하는 중심 건물이며,
위에서 보면 ‘丁’ 자와 같아 ‘정자각’이라고 부르며
정전 3칸에 배위청 2칸이 덧붙은 5칸으로 되어 있다.
▶수복방 터
좌우에 있는 수라간과 수복방은 없다.
다만 오른쪽에 수복방이 있었던 흔적만 남아있다.
▶동쪽 정자각 계단
정자각 계단은 정면에 두지 않고 측면에 만들었다.
이는 해가 동쪽(시작과 탄생)에서 떠서 서쪽(끝과 죽음)으로 지는 섭리를
건축물에 활용한 것이라고 한다.
▶비각
왕의 행적을 적은 신도비나 표석을 보호하는 건물.
▶표석
단경왕후 사후 150년 만에 추촌 되어 1807년 순조 때 세워졌으며,
비문은 ‘조선국 단경왕후 온릉(朝鮮國 端敬王后 溫陵)’으로 되어 있다.
▶비문 역문
恭昭順烈端敬王后愼氏 中宗大王元妃 成化二十三年丁未正月十四日誕生
(공소순열단경왕후신씨 중종대왕원비 성화이십삼년정미정월십사일탄생
正德元年丙寅正位中壼未幾遜于私第
정덕원년병인정위중곤미기손우사제)
嘉靖三十六年丁巳十二月七日昇遐 葬于楊州西山長興面水回洞
(가정삼십육년정사십이월칠일승하 장우양주서산장흥면수회동)
亥坐之原 壽七十一 英宗己未復位上諡
(해좌지원 수칠십일 영종기미복위상시)
崇禎紀元後一百八十年丁卯四月 日 立
(숭정기원후백팔십년정묘사월 일 립)
▶산신석
장사 후 3년 동안 후토신(땅을 관장하는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곳으로
정자각 뒤 오른편에 있다.
▶신로
제향을 받은 혼령은 신문을 나와 신로를 따라 능침으로 돌아간다.
▶정전
정전 내부에는 제수를 진설하는 제상(祭床)과 향을 올리는 향상(香床),
축문을 올리는 축상(祝床), 축문을 태우는 망료상 등이 진열되어 있다.
▶단경왕후(사진자료 궁능유적본부)
단경왕후 신 씨는 본관이 거창인 익창부원군 신수근과 청원부부인 한 씨의 딸로
1487년(성종 18)에 태어났다.
1499년(연산군 5) 성종의 아들 진성대군과 혼인하여 부부인이 되었고,
1506년 중종반정으로 진성대군이 왕위에 오르자 왕비로 책봉되었다.
그러나 단경왕후의 아버지 신수근이 역적(연산군의 처남으로 중종반정을 반대하였음)이라는
이유로 왕비가 된 지 7일 만에 폐위되었다.
1515년(중종 10) 중종의 두 번째 왕비 장경왕후가 세상을 떠난 후
폐비 복위론이 있었으나 무산되었다.
1557년(명종 12)에 71세로 세상을 떠났고, 세상을 떠난 지 182년이 지난 1739년(영조 15)
왕비의 신분을 회복하여 '단경왕후'라는 시호와 '온릉'이라는 능호도 받는다.
능침 봉분은 병풍석과 난간석을 생략하였고, 봉분 주변에는
문석인, 석마, 장명등, 혼유석, 망주석을 세웠고, 석양과 석호는 1쌍씩 배치하였다.
실록에는 '예(禮)를 지키고 의(義)를 지키는 것을 단(端)이라 하고,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공경하고 조심하는 것을 경(敬)이라 한다'라고 돼있는데,
아마도 온릉(溫陵)은 지아비인 중종의 따스한 정을 그리워했다고 해서 붙인 이름일 것이다.
▶중종과 치마바위
중종은 부인(신 씨)을 잊을 수 없어 경회루에 올라 인왕산 기슭을 바라보곤 하였으며,
신 씨는 이 말을 전해 듣고 종을 시켜 자기가 입던 붉은 치마를 경회루가 보이는
이 바위에 걸쳐 놓음으로써 간절한 뜻을 보였다 한다.
이 일로 인해 사람들은 이 바위를 치마바위라 불렀으며
이 바위가 인왕산 중턱 병풍바위 앞에 우뚝 솟은 치마바위이다.
1506년(연산군 12) 중종반정으로 왕후가 되었으나 왕후에 오른 지 7일 만에 폐출되었다.
아버지 신수근이 매부인 연산군을 위해 중종반정에 반대하여 성희안과 박원종 등의
반정 추진파에게 살해되었으므로, 역적의 딸이라 하여 폐위된 것이었다.(사진자료 궁능유적본부)
▶중종반정
1506년(연산군 12) 이조참판을 지낸 성희안과 중추부지사 박원종이
재위 12년간 폭정으로 국가의 기틀을 흔들어 놓은 연산군을 몰아내고
이복동생인 진성대군(중종)을 왕으로 추대한 사건.
중종반정의 결과 연산군의 학정은 끝났으나 반정 공신들에 의한 전횡이 이어지면서
근본적인 제도개혁은 이루어지지 못했다고 한다.
온릉의 기신제 일정은 음력 12월 7일이다.
▶서쪽계단
제례를 마친 제관들이 계단을 내려와 북서쪽에서 제례를 끝낸다는 의미로
지방을 불사르고 제물을 예감에 묻는다.
▶예감
제향에 사용된 축문을 태워서 묻는 돌구덩이.
망료: 제사가 끝나고 축문이나 지방이 불에 다 탈 때까지 지켜보는 일.
세상을 떠난 지 182년이 지나 비록 복위는 되었지만
우리의 뇌리에는 잊힌 왕비로 계신 듯하여 안타깝다.
이제 숲길로 떠나보자.
숲길은 능 앞의 나지막한 길을 걷는 것으로 길이는 약 450m 정도다.
이정표를 따라 올라간다.
숲길 정상부에는 의자와 함께 쉴 수 있는 공간이 주어진다.
▶갈황색 미치광이 버섯
갈황색 미치광이 버섯은 하나의 버섯대에서 다른 버섯대가 분화대거나
분화된 위로 층층이 분화되면서 성장한다.
즉 한뿌리에 여러 개의 대가 생겨서 성장한다.
갈황색 미치광이 버섯에 함유된 짐노필린(gymnopilin 신경계 독성분), 비스노리안고닌
(bisnoryangonin 향정신성 성분), 실로시빈(psilocybin 환각성분) 등의 성분은
중추신경계통에 중독현상을 일으키는 환각작용으로 정신이상, 손발의 경련,
의식장애 등 환각 증상을 보여주는 독버섯이다.
중독현상으로 신경계통에 작용을 하여 환각 증상, 흥분 등 웃음을 일으킨다.
숲길 이정표.
데크를 걸어 나오며 숲길은 마무리한다.
아쉬움에 다시 한번 뒤를 돌아본다.
온릉은 2019년 11월부터 공개되어 무료로 운영 중이나
대중교통이 불편해 찾는 이도 그리 많지 않다.
비운의 왕비 단경왕후의 삶은 그리움과 쓸쓸함으로 살다가
이곳 온릉에서 영원한 숙면에 들어가셨다.
살아생전 7일 만에 폐위된 후 71세로 죽음에 이를 때까지 한 많은 삶을 살다가
죽어서도 중종 곁으로 가지 못하고 멀리서 지켜보고 있는 심정은 얼마나 안타까울까
나 또한 그런 마음을 이해하며 온릉을 빠져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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