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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릉과 궁

창덕궁의 봄

창덕궁(昌德宮)은 1405년(태종 5) 법궁인 경복궁의 이궁(離宮)으로 창건되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다가 1610년(광해군 2) 궁궐 중 처음으로 다시 지어졌으며, 
이후 역대 왕들이 1867년 경복궁이 중건될 때까지 약 270여년 동안 창덕궁을 더 많이 사용하여 
실질적인 법궁의 역할을 하였다. 
특히 대조전 부속 건물인 흥복헌은 1910년 경술국치가 결정되었던 비운의 장소이기도 하며, 
낙선재 권역은 광복 이후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실 가족(순정황후(순종 두 번째 황후), 
의민황태자비(이방자 여사), 덕혜옹주(고종의 딸))이 생활하다가 세상을 떠난 곳이기도 하다.

▶돈화문

돈화문은 창덕궁의 정문으로 1412년(태종 12)에 처음 지어졌는데 
창건 당시 창덕궁 앞에는 종묘가 자리 잡고 있어 궁의 진입로를 궁궐의 남서쪽에 세웠다. 
이후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609년(광해군 1)에 다시 지었는데, 
규모는 2층 누각형 건물로 궁궐 대문 가운데 가장 큰 규모이다. 
돈화문은 왕의 행차와 같은 의례가 있을 때 출입문으로 사용하였고, 
신하들은 보통 서쪽의 금호문으로 드나들었다 한다.

▶금천교

금천교(錦川橋)는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과 진선문(進善門) 사이를 지나가는 명당수, 
즉 금천(禁川) 위에 세운 돌다리이다. 
금천은 북쪽에서 남쪽으로 흘러 돈화문 동쪽 궐 밖으로 빠져나간다. 
금천교는 창덕궁이 창건되고 6년 뒤인 1411년(태종 11)에 조성되어 현재까지 잘 남아있는 돌다리로, 
현존하는 궁궐의 돌다리 중 가장 오래되었다.
규모는 길이 12.9m, 너비 12.5m로, 전체적인 구조는 홍예(虹蜺, 무지개 모양) 2개를 받치고 
그 위에는 장대석 모양의 멍에돌(駕石)을 얹었다. 
다리 옆면 홍예 사이의 벽에는 귀면(鬼面)을 새겼고, 
그 아래쪽 두 홍예 가운데에는 남쪽에는 해태로 추정되는 석상, 북쪽에는 거북이를 닮은 석상을 배치하였다. 
금천교는 2012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자료: 궁능유적본부)

▶진선문

진선이란, 임금에게 바른말을 올린다 라는 뜻으로 
이곳에 신문고가 있어서 이름을 진선문이라 하였다 한다. 

 진선문과 숙장문 사이에는 직사각형 마당.

▶인정문

인정문(仁政門)은 창덕궁의 정전인 인정전의 정문으로 앞면 3칸, 옆면 2칸의 팔작지붕의 형태이다. 
인정문은 왕의 장례(국장)가 있을 때 다음 왕의 즉위식을 치렀던 곳으로 
이곳에서 효종, 현종, 숙종, 영조, 순조, 철종, 고종이 왕위에 올랐다. 
인정문은 1985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인정전

인정전(仁政殿)은 창덕궁의 정전으로 왕의 즉위식, 신하들의 하례, 
외국 사신의 접견, 궁중 연회 등 중요한 국가행사를 치르던 곳으로, ‘인정’은 ‘어진 정치’라는 뜻이다. 
인정전은 창덕궁이 창건될 때 건립되었으나 1418년(태종 18)에 다시 지어졌고,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610년(광해군 2)에 재건, 1803년(순조 3)에 소실된 것을 
다음 해에 복원해 현재에 이른다.
인정전은 1985년 보물로 지정되었고, 외행각 일부는 1991년 이후에 복원하였다.

▶선정문

▶선정전

선정전(宣政殿)의 ‘선정’은 ‘정교(政敎)를 선양(宣揚)한다’ 즉, ‘정치는 베풀어야 한다’라는 뜻으로, 
왕이 신하들과 함께 일상 업무를 보던 공식 집무실인 편전(便殿)이다. 
이곳에서 조정 회의, 업무 보고, 경연 등 각종 회의가 이곳에서 매일 열렸다. 
이곳은 창건 당시에는 조계청(朝啓廳)이라 불렀는데, 1461년(세조 7)에 

지금의 선정전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후 임진왜란을 거쳐 인조반정 때 소실되었다가 1647년(인조 25) 인경궁의 편전인 
광정전(光政殿)을 옮겨 지었는데, 현재 궁궐에 남아있는 유일한 청기와 건물이다.
선정전은 1985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자료: 궁능유적본부)

▶숙장문

숙장문은 성종 6년(1475) 좌찬성 서거정이 지어 올린 이름을 성종이 낙점하여 그때부터 사용된 이름이다. 
일제강점기에 헐렸다가 1996년 시작된 복원공사를 통해 재건되었다고 한다.

숙장문을 들어서면 펼쳐진 전경.

▶미선나무

미선나무의 이름은 아름다운 부채라는 뜻의 미선(美扇) 또는 
부채의 일종인 미선(尾扇)에서 유래하였다 한다. 
열매의 모양이 둥근 부채를 닮아 미선나무라고 부르는데, 
우리나라에서만 자라는 한국 특산식물이다.
볕이 잘 드는 산기슭에서 자란다. 높이는 1m에 달하고, 
가지는 끝이 처지며 자줏빛이 돌고, 어린 가지는 네모진다. 
잎은 마주나고 2줄로 배열하며 달걀 모양 또는 타원 모양의 달걀형이고 
길이가 3∼8cm, 폭이 5∼30mm이며 끝이 뾰족하고 밑 부분이 둥글며 
가장자리가 밋밋하다. 잎자루는 길이가 2∼5mm이다.

▶대조전

대조전(大造殿)의 ‘대조’는 ‘큰 공업을 이룬다’라는 뜻으로, 
창덕궁의 정식 침전이자 왕비의 생활공간이다. 
대조전은 창덕궁의 전각 중 유일하게 용마루가 없는 건물로, 
창덕궁 창건 당시부터 여러 차례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다시 지었다. 
현재의 대조전은 1917년 대화재로 소실되었다가 1920년 경복궁 교태전을 옮겨 
희정당처럼 내부를 마루와 유리창 등 서양식으로 꾸몄다.
대조전에서 추존 문조(효명세자)가 태어났고, 성종, 인조, 효종, 효현황후 김씨(헌종 첫 번째 왕비), 
철종, 순종이 세상을 떠났다. 
특히 대조전 부속 건물인 흥복헌(興福軒)은 1910년 마지막 어전회의를 열어 
경술국치가 결정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대조전은 1985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성정각

성정각(誠正閣) 일원은 창덕궁의 동궁, 즉 왕세자의 교육 공간이다. 
‘성정’은 ‘성심껏 마음을 바르게 하다’라는 뜻으로, 정확한 창건연대는 알 수 없으나 
숙종 대에 창건된 것으로 보인다.
성정각은 왕세자의 교육 공간이지만 기록에 의하면 여러 왕이 독서하던 곳으로 많이 사용되었다 한다.

▶매화나무

장미과에 속하는 낙엽활엽수로 높이 5 m 정도로 자란다. 
꽃을 매화라고 부르며 이른 봄에 핀다. 열매를 매실이라고 부르며, 
술을 담그거나 장아지 등을 만든다. 
이른 봄 제일 먼저 꽃피는 나무 중 하나로, 설중매라고도 한다. 
중국원산으로 전 세계에 300여 품종이 관상용 또는 과실수로 재배되고 있다. 
꽃의 색에 따라 백매화, 청매화, 홍매화 등이 있다.

창덕궁에는 수령이 400년이 넘는 고목 홍매화가 있습니다. 
이 홍매화는 선조 때 명나라 사신이 보내온 '성정매'로 알려져 있으며, 
오랜 세월 동안 창덕궁의 아름다움을 지켜왔습니다.
창덕궁의 홍매화는 단순한 꽃나무를 넘어, 
조선 왕조의 역사와 문화를 담고 있는 소중한 유산입니다.
창덕궁 홍매화는 겹겹이 피어나는 풍성한 꽃잎이 특징이며, 
진한 분홍색과 은은한 향기가 매력적입니다.
창덕궁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아름다운 궁궐로, 
홍매화가 만개하는 봄철에는 더욱 특별한 풍경을 선사합니다.

낙선재로 가는 길.

▶낙선재

낙선재 일원은 조선 24대 헌종이 후궁 경빈 김씨를 맞이하면서, 
1847년(헌종 13)에 창경궁 낙선당 터에 낙선재를 지었고 
이듬해에 석복헌( ‘석복’ : 복을 내려줌)과 수강재( ‘수강’ : 오래 살고 건강함)를 지었다. 
낙선재의 ‘낙선’은 ‘선을 즐긴다’라는 뜻으로, 낙선재는 헌종의 서재 겸 사랑채로 사용하였고, 
석복헌은 경빈의 처소, 수강재는 당시 대왕대비였던 순원황후 김씨(순조의 왕비)의 처소로 사용되었다.
특히 이곳은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후 순정황후 윤씨와 의민황태자비(이방자 여사), 덕혜옹주 등 
대한제국 마지막 황실 가족이 생활하다가 세상을 떠난 곳이기도 하다. 
낙선재는 2012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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